1일 1결정 - 사소한 것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성 훈련기
결정장애가 온 것 같고 무기력함에 빠진 것 같아 자율성을 기르기 위해 "메뉴 고르기, 경로 선택 등 자율성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해봤다.
1. ‘오늘 뭐 먹지?’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평소 메뉴 고르는 걸 무척 싫어했다.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왔고, 상대방이 먼저 의견을 내주길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7일간의 실험에서는 매일 하루 한 가지는 반드시 ‘내가 먼저’ 선택하기로 했다. 첫 도전은 점심 메뉴였다.
회사 근처에는 식당이 너무 많다. 그래서 메뉴를 고를 땐 늘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이번엔 검색 없이 내 감각을 믿기로 했다. 첫날은 평소보다 이른 점심 시간에 땡기는 대로 ‘잔치국수’를 택했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다음 날엔 회사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는데, ‘오늘은 내가 골라볼게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내가 메뉴를 정한 뒤엔 왠지 모르게 식사 자리에서 대화 주도권도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선택을 피하지 않기로 하니, 내 안에 있는 감각들이 조금씩 깨어났다. ‘내가 오늘 매콤한 걸 먹고 싶다’는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단순한 끼니 때우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매일 선택을 반복하면서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피하는지도 더 명확해졌다.
2. 출퇴근길, 지도 대신 ‘내 길’을 선택했다.
두 번째 실험은 자율성의 대표 격인 출퇴근 경로에 대한 선택이었다. 평소엔 늘 앱이 추천해주는 길만 따라갔고, 생각 없이 걷거나 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지도앱 없이 나만의 경로를 선택해서 출퇴근해보기를 실천해봤다.
처음 며칠은 약간 헤매기도 했다. 아침엔 괜히 돌아간 길 때문에 지각할 뻔한 적도 있었고, 지하철에서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루트를 택했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후회도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길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통제감과 주도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회사 근처 카페를 우연히 발견했고, 거기서 아침커피를 마셨다. 또 어느 날은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택했더니 조깅하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산책하듯 출근하게 되었다. 길은 단순히 장소를 잇는 게 아니라, 내 하루의 기분을 결정짓는 요소였다. 내가 택한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모두 새로웠고, 덕분에 출근길이 ‘루틴’이 아니라 ‘경험’이 되었다.
3. 자율성의 성장 그래프를 만들었다.
7일간의 실험이 끝났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간단한 표로 정리해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밥 뭐 먹었는지’ 수준이었지만, 갈수록 선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깊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다보니 능동성이 향상되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재밌었다.
| 날짜 | 결정한 것 | 결과 | 느낀 점 |
| 1일차 | 점심 메뉴(잔치국수) | 만족 | 내가 땡기는 음식에 귀 기울이니 좋았다 |
| 2일차 | 퇴근길 골목길 경로 | 예상보다 사람 적음 | 스스로 결정하니 길 자체가 즐거웠다 |
| 3일차 | 모임 약속 장소 | 직접 고름 | “이런 데 잘 아네~”란 말 들음 |
| 4일차 | 아침 옷 스타일링 | 색조합 시도 | 출근길에 칭찬 받음 |
| 5일차 | 주말 일정 혼자 기획 | 서점 → 전시회 | 뿌듯함이 오래 갔다 |
| 6일차 | 식비 예산 조정 | 지출 감소 | 작은 선택도 생활비에 영향 줌 |
| 7일차 | 카페에서 혼자 노트북 작업 | 집중 성공 | 선택을 잘했을 때 성취감 상승 |
처음엔 사소한 선택들 같았지만, 하루 한 번씩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를 하면서 자존감이 천천히 올라가는 걸 느꼈다. 타인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보단, 내 안의 기준을 조금씩 세워나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모든 선택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후회는 적었다.
이번 실험 이후, 나는 ‘메뉴 선택권’을 자주 쥐려 하고, 앱보다는 내 길을 먼저 그려본다.
자율성은 태도이자 훈련이었고, 그렇게 나의 일상은 조금 더 나답게 설계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