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안 하기로 했잖아?”: 낭비를 줄이는 ‘하지 말기 리스트’ 실험기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1. 시작은 역발상이었다: 하지 않을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하루를 돌아봤을 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다. 일은 하고, 밥은 먹고, 틈틈이 유튜브 보고, 카톡 확인하고, 누워서 폰 만지다 보면 하루가 갔다. 피곤하다고 느끼는데 돌아보면 딱히 열심히 산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두는 할 일 리스트는 매일 만들었지만, 정작 그걸 끝내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To-Don’t List”라는 개념을 접했다. ‘하지 않을 일을 정해두고, 그것만 안 해도 삶의 낭비가 줄어든다’는 발상은 꽤 신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우선 지난 한 주간 내가 가장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낀 행동을 적어봤다. 예를 들어 “출근 전 침대에서 30분 폰 보기”, “퇴근 후 의미 없이 쇼츠 보기”, “배달 앱으로 1시간 동안 메뉴 고르기”, “할 말 없이 인스타 둘러보기” 같은 것들이었다. 딱히 나쁜 행동은 아니지만, 하루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던 것들이다. 그렇게 일단 ‘내 삶을 잠식했던 것들’을 리스트로 정리했고, 이를 “To-Don’t List”로 이름 붙였다.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앞에 붙였다. 그리고 폰 배경화면에도 저장했다. 내 ‘하지 말기 리스트’는 단순했다.
- 아침에 폰으로 SNS 보지 않기
- 유튜브 쇼츠 15분 이상 안 보기
- 할 말 없는 연락 먼저 하지 않기
- 배달 음식 고르는데 10분 이상 쓰지 않기
이 네 가지를 지키는 게 목표였다. 하루를 더 단순하게, 그리고 목적 있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도 기대됐다.
2. 안 하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실험 첫날부터 쉽지는 않았다. 특히 아침에 폰을 보는 습관은 무의식에 가까웠다. 눈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폰을 들고, 인스타그램과 카톡, 메일, 날씨까지 쓱 훑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눈을 떠도 손을 뻗지 않기 위해 일부러 폰을 책상에 놔두고 잤다. 그리고 아침 시간에는 물 마시기, 스트레칭, 간단한 일기 쓰기를 넣어 대체했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변화만으로 하루가 훨씬 ‘능동적’으로 시작됐다.
유튜브 쇼츠 제한은 더 어려웠다. 사실 이건 이미 중독에 가까웠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는 머리를 식히기엔 좋지만, 나도 모르게 1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차단 앱을 설치하고, ‘보고 싶을 때는 15분 타이머를 맞춘 후에만 보기’로 규칙을 정했다. 처음에는 15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시간을 정해놓고 보니 더 집중해서 보고 바로 그만둘 수 있었다.
‘할 말 없이 연락하지 않기’는 생각보다 큰 평화를 줬다. 나는 습관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돼 있어야 안심되는 성격인데, 사실 의미 없는 연락은 내 에너지와 집중력을 많이 빼앗고 있었다. 연락을 줄이니 오히려 내가 정말 연락하고 싶은 사람과의 대화가 더 깊어졌다. 뭔가 고요한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다.
3. 한 달 뒤, 나는 덜 피곤해졌고 더 또렷해졌다
To-Don’t List를 실천한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스스로에게 꽤 뿌듯함을 느꼈다. 지키기 어려운 날도 있었고, 유혹에 넘어간 날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분명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 않기로 한 행동들을 줄였더니 자연스럽게 생긴 ‘빈 시간’들이 내게는 진짜 선물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아침에 폰 대신 일기를 쓰다 보니 하루를 정리하고 계획하는 루틴이 생겼고, 유튜브 대신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게 됐다. 연락을 줄이니 감정 소모도 덜했다.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안 할지’가 나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안겨주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나는 내 To-Don’t List를 업데이트했다. 예전 항목들은 이제 굳이 쓰지 않아도 잘 지킬 수 있었고, 새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추가했다. 예를 들면 “회사 일 끝나고 업무 메신저 확인하지 않기”, “지나친 비교 멈추기” 같은 것들이다. 삶을 조금씩 ‘덜어내는’ 방식으로 단단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 실험은 나에게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줬다. 앞으로 새로운 습관을 들일 때도 “그건 나에게 필요한가?” “오히려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하게 됐다. ‘하지 말기 리스트’는 단순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었다.